은퇴 후 근황

중앙의료의원 심완주

내과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하는 일을 크게 정리하여 나누면 연구, 교육 그리고 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 분야의 활동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야하는 의과대학 교수의 삶은 매우 빡빡하다. 33년간 그렇게 달려오다 정년이 가까우면,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도 차일피일하다가 다행이 65세라는 기준이 있어 강제로라도 remodeling을 하게 된다.

나는 2019년 퇴임 후 고려대학 병원에서 2년간 일을 더하게 되었고, 이 시기에 행정적인 일이나, 연구 활동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진료와 전공의와 학생들의 임상교육을 주로 하게 되면서, 업무가 축소되고 내용상 변화가 없어 크게 당황하는 일은 없었다. 이 때 환자들의 인사가 주로 “ 선생님 뭐 좋은 일 있으셔요? 얼굴이 훤하십니다!” 였다. 창의적이지 못한 머리로 수십 년 연구하느라 어지간히 속을 태웠나보다 하고 스스로 생각했다. 2021년 부터는 중앙의료의원으로 옮겼다. 집에서 20분이면 출퇴근이 가능하고, 관상동맥 CT 조영술, 심초음파, 운동부하 및 Holter 검사가 가능하여 선택하였다. 문제는 기사나 간호사가 training이 되어 있지 않은 점인데 6개월 정도 노력 끝에 이런 문제도 해결되었고, 환자가 늘어 2024년 9월부터 카톨릭의대에서 퇴임하신 윤호중 교수를 초빙하여 근무일 수를 줄여서 일주일에 3일을 일하고 있다. 나와 보니,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순환기 환자를 볼 수 있는 경험 있는 의사가 개업가에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과전문의라도 심장환자라면 일단 겁부터 내고 무조건 3차병원으로 전원 시키는 듯한 모습이고, 이런 점이 개선되어야 심장내과의 발전이 가속화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퇴임하여 좋은 점 중에 하나는,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제한적이나마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평소 여러 종류의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번역본은 주어가 도대체 무엇 인지 모호할 때가 많고, 단어를 번역사전에서 그대로 베낀 책이 많아 읽기가 어려울 때가 많았다. 작가의 언어로 쓰여진 책을 읽으며 보다 명확하게 내용이 이해되고 , 영어 특유의 신박한? 농담에 킥킥거리고, 함축적인 상징들, 문화에 따른 다른 심리적인 배경들을 생각하며 흥미로워 하고 있다. 다 읽은 책을 쌓아놓고 스스로 뿌듯해 하기도 한다, 틈틈이 여행도 하고 있다. 한 장소에 머물며 골목길을 헤메고, 동네의 식당이나 카페에 앉아서 시간 보내고, 시장구경 좋아하는 느린 나의 여행스타일은, 바쁘게 달려온 생활을 하던 나로서는 즐기기 어려운 것이었다. 거실 방문에 커다란 대한민국 지도를 붙여놓고 ,가고 싶은 곳을 골라 시간 되는대로 버스나 기차를 타고 1-2박 여행을 한다. 낙동강의 몽환적인 물안개, 바다별로 다른 파도와 바다색, 주변의 산수를 품고 있는 고찰의 풍경, 붉은 땅의 밭에 가지런하게 줄지어 앉아있는 채소들을 보고 다닌다. 돌아오면 다음은 어느 지방을 가볼까 궁리하고 있다. 코로나 끝나고 해외여행도 시작했다. 이 또한 길게 잡아서 2주 이상 여행한다. 2년째 스페인을 다니고 있다. 겨울의 스페인은 한국과 달리 혹독한 추위가 없고, 그들의 태평함, 느릿느릿함이 편안하게 느껴져 언젠가 한 두달 살아볼까?, 간단한 스페인어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도 한다.

시간지나 언젠가 환자 보는 것에 열정이 떨어지고 , 읽는 책에 흥미가 떨어지고 아름다음을 못 느끼는 때가 올 것이다. 지금 그렇지 않음을 감사히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오늘을 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