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 인생이 있고 심장이 있습니다.

인하의대 김대영

2024년 6월 ASE 방문 시 시애틀 매리너스 구장. 시애틀은 전통의 강팀이지만 워낙 타격이 약해서 응원 맛이 덜하다 보니 관중이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탁 트인 잔디 위에 웅장하고 광활한 경기장, 타자가 배트로 야구공을 때렸을 때 뻗어나가는 경쾌한 타구가 외야 잔디를 가르며 함께 느끼는 쾌감, 박빙의 승부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삼진으로 잡는 투수의 포효와 관중들의 환호, 그리고 시원하게 들이키는 맥주까지…야구는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소중한 여가이자, 삶의 애환을 반영하는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애인은 바뀔 수 있어도, 좋아하는 야구팀은 바뀌지 않는다!’: 35년간 야구를 사랑하며 새겨져 있는 제 마음의 강렬한 느낌표입니다.

제가 처음 야구를 만난 건 1990년 가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 우승 기념행사에 갔던 날이었습니다. 하얀색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휘젓는 선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매료되어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팀이 포스트시즌 (‘가을 야구’라고 합니다. 정규시즌이 끝난 후 우승팀을 가리는 준결승 및 결승전과 같은 경기입니다.)을 단골처럼 드나들던 1990년대에는, 언제 야구장에 가더라도 이길 것 같았고 지고 있더라도 언제든 신바람을 내며 역전승을 끌어내는 모습을 보면, 제가 좋아하는 야구도, 더불어 제 인생도 영원히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밀레니엄이 도래한 이후, 10년간 가을 야구에 진출하지 못한 암흑기 (‘6668587667’이라고 합니다. 8개 팀이 모인 프로야구 리그에서 이 기간 동안 한 번도 4강 안에 진출하지 못했던...)를 거치게 되었고, 제 인생도 학업이나 군대 문제로 비슷한 역경의 시절을 근근이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긴 터널에도 끝이 있듯,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취득한 후 결혼하여 수련 과정을 거치는 동안, 제가 좋아하는 팀도 다시 강팀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29년 만에 우승도 맛보았습니다. 올해에도 기대 이상의 성적으로 저에게 소소한 기쁨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제가 결혼한 2013년 이후로, 저의 야구팀은 암흑기에서 탈출하였고, 다행히도 지금까지 제 아내도, 좋아하는 야구팀도 바뀌지 않고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2023년 8월 사직야구장. 이날 하루만 롯데팬. 딸에게 갈매기 머리띠를 사주었으나 큰 감흥이 없습니다. 야구장 맥주는 항상 시원합니다.

야구는 심장과 몇 가지 닮은 점이 있습니다. 야구에서 득점하기 위해서는 4개의 베이스를 거쳐야 하는데, 심장도 원활한 순환을 위해서는 4개의 방 (Chamber)과 4개의 판막 (Valve)을 문제없이 지나야 합니다. 간혹 도루에 실패하여 다음 베이스로 진루하지 못하기도 하고 (협착, stenosis), 다음 타자가 아웃되면 선행 주자는 어쩔 수 없이 진루 기회를 얻지 못하고 귀루해야 하며 (역류, regurgitation), 득점 찬스가 많아도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릴 능력이 없으면 (수축 기능 저하, systolic dysfunction), 주자들이 홈 베이스를 밟지 못해 승리 기회를 놓치게 되는 점이 혈액의 circulation과 제법 닮았습니다. 우리가 야구장에서 응원하는 팀이 시원한 홈런으로 손쉽게 점수를 낼 때 느끼는 환호는, 마치 중환자실에서 환자의 혈역학 (hemodynamics)이 안정되며 compensation을 회복할 때 주치의가 느끼는 기쁨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이제 야구는 천만 관중 시대를 열었고, 시간이 갈수록 그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저보다 더 오랜 기간 야구를 즐기셨던 선생님들도 많으시겠지만, 제가 경험한 ‘더 재미있게 야구를 관람하는 방법’ 몇 가지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듯, 우선 시간을 내어 야구장에 가 보셔야 합니다. 여느 때보다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약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첫째, 응원하는 홈팀의 회원으로 가입하면 일반 예매보다 하루 내지 3일 정도 먼저 선예매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선예매가 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네이버 시계’ (시간을 맞추기에 제일 정확함)에 맞춰 정각에 예매 버튼을 누릅니다. 다음으로, 예매 시 좌석은 ‘자동 배정’으로 하는 것이 성공 확률을 높입니다. (‘직접 선택’을 하면 좌석 선점 타이밍을 놓쳐서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도 어렵다면, 종종 ‘어둠의 경로’ (당근 등등)를 통한 티켓 구입을 시도해 보기도 합니다만... 모든 것이 여의치 않다면, 경험상 팀 성적의 윤곽이 어느 정도 결정되는 7월 이후에는 티켓 확보가 상대적으로 수월해지므로, 맥주 한 잔과 함께하는 한여름 밤의 시원한 야구를 즐기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 2023년 8월 사직야구장. 이날 하루만 롯데팬. 딸에게 갈매기 머리띠를 사주었으나 큰 감흥이 없습니다.
야구장 맥주는 항상 시원합니다.

  • 2025년 3월 잠실야구장. 고교수님 김교수님은 야구팬이 아닌데도 제가 억지로 데리고 갔습니다. 죄송합니다.

티켓을 구해 경기 시작 시간에 맞춰 자리에 앉으면, 그다음은 경기장의 선수들과 단상의 응원단장이 관중들을 알아서 즐겁게 해줍니다.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특히 응원가를 따라 부르며 큰 희열을 느끼는데, 선수 응원가는 대부분 익숙한 가요나 클래식 음원을 인용하여 심플하게 만들어져 있어, 타순 두 바퀴 (5~6이닝)만 돌면 금방 익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먹거리는 이전보다 다양해졌지만, 아쉽게도 그다지 ‘맛집’이라고 할 만한 곳은 찾지 못했습니다. 치킨은 대부분 식어 있고, 튀긴 지 오래된 너겟 형태를 판매하는 것 같아 직접 사 먹어보면 눈물이 납니다. 다른 신메뉴들도 큰 기대를 하긴 어렵고, 그나마 먹을 만한 건 떡볶이 종류인 것 같습니다. 물론 생맥주는 어디서나 맛있습니다만...

혹시 야구 경기가 너무 길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겠습니다. 반갑게도, 올해부터 ‘피치 클락 (Pitch Clock)’—정해진 시간 안에 투수가 타자에게 공을 던져야 하는 규정—이 도입되었고, 덕분에 웬만한 야구 경기는 3시간 안에 끝나는 것 같습니다. 진료와 연구, 당직 근무까지 바쁘시겠지만, 함께 직관하며 업무 스트레스를 날리고자 하시는 선생님들이 계신다면 진심으로 함께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