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추정’인 고양이와의 동행
서울의대 윤연이
저는 깔끔한 것을 좋아합니다. 덕분에 집은 병원이 연상될 만큼 하얗고, 가구도 최소한만 두고 살았습니다. 정리정돈이 안 되어 있으면 마음이 먼저 어지러워지고, 집에 먼지가 쌓이는 건 더더욱 못 참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제가 애완동물을 키우는 날이 올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집에는 여기저기 캣타워와 숨숨집이 놓여 있고, 하얀 털 뭉치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털의 주인은 룰루입니다.
룰루는 페르시안 먼치킨으로 추정됩니다. 나이도 5–6세쯤으로 추정되고요. 유기묘를 입양한 터라 룰루의 과거는 대부분 ‘추정’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름만큼은 확실합니다. 룰루. 사실 이 이름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 길에서 헤매던 룰루를 임시보호자가 구조하면서 붙인 이름이니까요. 그래도 저는 이름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미 낯선 환경에 던져진 룰루에게, 이름까지 바뀌는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부르면 “응?”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털복숭이 룰루
처음 데려왔을 때 룰루는 2주 동안 소파 아래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료도 잘 먹지 않았고, 제가 집을 비워도 늘 소파 아래에만 숨어 있었죠. 저는 룰루를 보기 위해 펫캠을 소파 아래에 설치해야 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애가 탔습니다. 밥은 먹는지, 물은 마시는지, 아픈 건 아닌지 매일 마음이 조급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은 룰루가 저를 평가하던 시간이었을 겁니다. “이 집은 안전한가, 이 사람은 믿을 만한가.” 룰루에게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룰루는 소파 밖으로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공간을 확인하듯 조심스러웠고, 조금씩 편안해지는가 싶더니 어느덧 제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소파에 앉아 있는 제 옆에 와서 처음으로 몸을 붙이던 날은 정말 감격적이었습니다. 그렇게 룰루는 제 삶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룰루가 이제는 하루 종일 저를 따라다니는 개냥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책상에서 일을 하면 슬쩍 올라와 옆을 차지하고, 거실로 가면 소파 근처에 자리를 만듭니다. 제가 TV를 보면 TV 아래에 앉아 저를 바라봅니다. 퇴근해 샤워를 하고 나오면 욕실 문 앞에서 기다리기도 하고요. 제가 아파서 누워 있으면 제 얼굴에 몸을 비비다가, 조용히 몸을 맞대고 눕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웃습니다. 조그만 생명체에게 제 영혼이 붙잡히는 기분이랄까요.
책상 차지하고 일 방해하기
집사 옆에서 자기
TV보는 집사 바라보기
물론 대가가 있습니다. 털입니다. 룰루는 흰색 고양이인데, 하얀 털 뭉치가 정말 붕붕 날아다닙니다. 공기 중에 ‘하얀 부유물’이 떠다니는 느낌이랄까요. 검은 옷은 각오가 필요하고, 돌돌이는 집안 곳곳에 상비품이 됐습니다. 때로는 출근 후 귀나 코에서 룰루 털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털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죽 소파는 룰루가 뛰어다니며 남긴 발톱 자국 때문에 여기저기에 스크래치가 났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이런 걸 견딜 수 있는 사람이었나?” 싶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니 그 스크래치가 ‘손상’이 아니라 ‘기록’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룰루가 이 집을 자기 공간이라고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흔적. 긴장하던 몸이 풀리고, 뛰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 흔적 말입니다. 깔끔쟁이었던 제가 이렇게 유연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가끔은 여전히 한숨이 나오지만요. 한숨을 쉬고, 또 돌돌이를 들고, 또 웃습니다.
룰루의 품종도, 나이도, 과거도 대부분 ‘추정’입니다. 하지만 룰루가 제 옆에 와서 조용히 앉는 순간, 가끔 골골거리며 눈을 반쯤 감는 순간, 제가 피곤한 날 유난히 더 가까이 붙어 있는 순간만큼은 추정이 아닙니다. 그건 꽤 확실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해졌고, 서로의 하루가 되었고, 집이라는 공간은 ‘함께 사는 곳’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깔끔한 편입니다. 다만 이제는 완벽한 정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겼습니다. 소파 아래에서 시작한 룰루의 용기를 기다려준 시간, 그리고 그 이후로 저를 따라다니는 작은 발걸음들. 그게 제 집에 털을 남기고 소파에 스크래치를 남기더라도, 제 마음만큼은 훨씬 더 정돈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