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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HF The Korean Society of Heart Failure

Heart Failure Times

Vol.46, Mar. 2024

HEART FAILURE FREE TIME

시간여행자 ‘산드로 보티첼리’가 500년 전에 본 폐와 심장 (Lung and Heart in Sandro Botticelli’s Artworks)

박상민노원을지병원 심장내과

그림 ‘La primavera (Spring, 봄)’는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가 1470년대 후반에서 1480년대 초반에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그림 1-A]. 주인공인 비너스 여신은 복판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우리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보티첼리의 또 다른 명작 ‘비너스의 탄생’의 인물처럼 이 작품의 비너스 역시 상당한 각도의 ‘꺾인 목’ 상태로 과도하게 유연한 관절을 자랑하고 있어 두 비너스는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 (그림 2-A, HF TIMEs 24년 1월호 ‘젊은 남자의 초상’ 참조).

그림 ‘La primavera (Spring, 봄)’

이 작품에서 비너스는 전체적으로 역S자 형의 모습으로 서있다. ‘밀로의 비너스상 (루브르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Contrapposto 자세로 흘러내리는 빨간 망토형의 얇은 덫옷을 허벅지에서 더 흘러내리지 않게 왼손으로 살포시 잡고 있다. 여담이지만, ‘밀로의 비너스’는 양팔이 잘려 있는 상태이다. 1820년에 밀로스 섬에서 발견된 헬레니즘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조각상 제작 당시에 팔과 손의 모양이 어땠을까?’하는 많은 예술적 상상력을 일으켜서 신비감을 더해준다. 예술적 허용이 받아들여진다면 ‘밀로의 비너스’의 팔과 손의 모양은 어쩌면 보티첼리의 ‘La primavera’의 비너스와 비슷한 모양은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La primavera’ 그림의 시간적 순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펼쳐지는 느낌이다. 맨 오른쪽에는 유럽에서 봄을 상징하는 3월의 서쪽바람의 신인 Zepyhyrus가 Chloris를 뒤에서 껴안으려는 모습이고, 그녀의 입에서는 꽃나무 가지가 피어나고 있다. 제피루스는 클로리스와 결혼하여 그녀를 봄의 여신 Flora로 변화시킨다. 보티첼리는 플로라를 클로리스의 왼쪽에 전신에 꽃 모양 드레스를 입은 여인으로 겹치게 그렸다. 플로라는 치마춤에서 봄의 상징인 꽃을 사방에 뿌리고 있고 바닥에는 꽃이 흩어져 있다. 비너스의 위에는 큐피드가 화살을 겨누고 있다. 그 화살의 타깃 쪽인 비너스의 왼편에는 그녀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를 갖는 세 명의 여신 (Three Graces, 삼미신)들이 아름답게 춤을 추고 있다. 맨 왼쪽 끝에는 등을 돌리고 딴짓을 하고 있는 듯한 Mercury가 칼을 차고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회색구름을 향해 나무 막대기를 들어 올리고 있다. 삼미신 중에 가운데의 한 여신이 그의 행동에 관심을 보이는 듯 하다.

그림의 전반적인 테두리의 모습은 이 그림의 제작 시기인 1480년대 르네상스 양식을 따르기보다는 아직까지 고딕적인 요소로 보인다. 그림의 배경은 오렌지나무숲인데, 대체로 나무는 검정색으로 채색되고 잘 익은 오렌지들이 열려있다. 검은 톤의 오렌지나무숲은 그림 속 인물들을 돋보이게 한다. 어두컴컴한 오렌지나무숲 사이로 보이는 회백색의 배경은 흑백의 대비를 보이며 뭔가를 형상화 하는 듯 하다. 그림의 주인공인 비너스의 뒤 배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검게 채색된 두 그루의 오렌지나무가 곡선을 이루어 만나고 그 사이의 공간은 주변 나무들 사이의 간격과 달리 대칭을 이룬 큰 아치형 창문과 같은 모양이다. 그 사이로 보이는 비너스를 강조하듯 뒤 편에 주변의 나무와는 다른 모습의 풀숲이 검게 음영처리가 되어있다. 이쯤에서, 의과대학의 정규과정을 이수한 의학도라면 비너스 뒤의 두 그루의 나무와 나뭇잎들이 만들어내는 형상과 풀숲의 음영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고 익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눈치가 빠른 독자들은 이미 인지하셨겠지만, 전체적으로 심장과 폐의 형태를 보여주는 Simple chest X-ray와 매우 유사해 보인다. 비너스의 머리 뒤쪽은 종격동 부분이고 비너스의 가슴 부분의 뒷 음영은 심장의 위치이다. 의학적 추리와 예술적 상상력을 더하여 보면 드물게 보는 Dextrocardia (우위심장)처럼 봐도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문제가 있는 심장과 폐의 음영으로 본다면, 우폐의 중엽 및 양측 하폐야에 consolidation처럼 보여 마치 lobar type의 Pneumonia를 표현한 것 같다. 양측 하폐야의 끝 마진에는 costophrenic angle의 blunting (CPA blunting)처럼 보여 폐렴에 동반되는 pleural effusion (특히 오른쪽 폐) 을 표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양쪽 CPA blunting의 음영을 비슷한 정도로 보고 비너스 목 양쪽 뒤편에 좌우로 뻣치는 듯한 음영을 hilar hazziness로 본다면 심부전이 동반된 흉부사진 같기도 하다. 또, 비너스 왼편 어깨의 큰 음영은 폐고혈압이나 심장 내 좌우 단락에 의한 우측 심장의 확장소견으로 해석해도 될 듯하다 [그림1-B].

‘완벽한 우연은 없다’는 가정하에 보티첼리가 그림에 폐의 모습을 알고 그려 넣었다고 본다면 그는 왜 그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가 궁금하다! 몇 안 되는 예술사학자와 의학자들 사이에서 도는 얘기가 있다. ‘비너스의 탄생’과 ‘La primavera’에서 비너스의 모델은 당대에 유럽의 르네상스 예술이 꽃 피는데 최고 후원자 역할을 했던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의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연인이었던, Vespucci Simonetta일 것으로 추정된다. 실존 인물이었던 미모의 시모네타는 안타깝게도 향년 22세에 폐결핵으로 사망(1476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티첼리 역시 메디치가의 상당한 후원을 받았던 예술가로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연인이 이른 나이에 폐병으로 요절한 사건은 그의 마음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을 것으로 상상이 된다 (일설에는 시모네타가 그에게 예술을 영감을 주었던 그의 muse였다는 얘기도 있다). 그래서 그는 ‘봄’이라는 화폭에 아름다운 시모네타를 기념하고 그녀의 사인인 결핵성 폐렴이나 심장문제를 감각적으로 그려 넣었을 수도 있겠다는 가설을 제시해 볼 수 있다.

비너스의 탄생’에서 비너스는 조가비에서 태어나서 제피루스의 서풍을 타고 해안으로 밀려온다. 이를 본 봄(또는 꽃)의 여신 플로라 (또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꽃무늬 있는 빨간 외투를 비너스에게 입혀주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억지 주장처럼 들릴 수도 있으나 일부 학자들은 이 빨간 외투와 플로라의 모습을 좌폐 (left lung)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림2-A and B].

La nascita di Venere 그림과 Left lung upola (yellow circle), Aortic knob (blue arrow), Lung hilum or pulmonary trunk (red yellow), Lingual lobe contour (yellow arrows) 그림

근현대 의학의 마일스톤이 된 X-ray는 1895년 ‘윌리엄 콘래드 뢴트겐’이 전극실험 중에 우연히 부인 ‘안나’의 손을 찍게 되면서 알려졌다. 뢴트겐의 발견은 금새 흉부의 내부 구조를 비침습적으로 보는데 활용되어 이듬해에는 흉부단순촬영기계가 발명되었고, 1909년경에 현대와 유사하게 1초 이내에 X-ray 영상을 획득할 수 있는 기술에 이르렀다. 400여 년 전 사람 보티첼리가 ‘La primavera’를 그냥 그렇게 그리다 보니, 비너스의 뒷 배경에 흉부단순촬영에서의 폐와 심장의 모양이 우연히 기가 막히게 정확하게 묘사된 것은, 그림의 제작 연대를 볼 때 의문스럽다.
유럽에서는 11세기경부터 대학에서 인체 해부학 강의가 이루어졌고 화가들도 인체에 대한 지식을 작품 활동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1500년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수많은 해부실습을 통해 인체의 해부 도감을 남겼듯이 당대의 대표 화가였던 보티첼리도 상당한 해부학적 지식을 자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카메라가 발명되기 3-4백 년 전인 당시의 유명 화가들은 해부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평면에 인체의 입체적인 모습을 표현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보티첼리의 그림에서처럼 평면에 투사된 입체의 모습을 알고 그렸다면 그건 당시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상상이 어려운 일로 보인다. ‘La primavera’는 Chest X-ray에서 심장과 폐의 음영이 무엇인지 잘 이해한 근현대 의학도였던 보티첼리가 1470년대 후반으로 시간여행을 가서 그가 본 가여운 여인 시모네타의 죽음을 그림으로 기록하여 놓은 ‘그림 진단서’는 아니었을까?? 어디까지나 예술적 또는 시적 허용의 범위의 일이고 모든 것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참고문헌

1. Blech B, Doliner R. Concealing forbidden knowledge. In The Sistine secrets: Michelangelo’s forbidden messages in the heart of the Vatican. HarperOne edition, San Francisco, 2009: pp. 32-33.
2. Lazzeri D. Acta Biomed. 2017; 88(4): 502–509.
3. Favorito LA, Logsdon NT. Sectional Anatomy of the Thorax. SpringerLink. 2022
4. Mould RF. The early history of X-ray diagnosis with emphasis on the contributions of physics 1895–1915. Phys Med Biol 1995; 40: 1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