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용 심근경색연구회 회장 (경상국립대학교병원)
근무하는 병원마다 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제가 1996년 경상대학교병원에 왔을 때만해도 당직의 개념은 그렇게 뚜렷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만 해도 심근경색증환자가 이렇게 많지도 않았고 재관류시간을 단축해야한다는 개념이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003년 미국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서도 저를 포함해서 스텝이 2명 밖에 없어서 당직은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당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전후였는데 국내외적으로 많은 자극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06년 ACC에서 의료질향상캠페인의 일환으로 Door-to-Balloon (D2B) Alliance for Quality가 시작되면서 미국의 많은 병원이 참여하였고, 이에 발맞추어 2005년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허혈성심질환 평가 및 가감지급사업을 계획하였고 2008년 11월에 1차 평가결과를 언론에 공표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가 근무하는 경상국립대병원은 인근의 50-100만인구가 심근경색증이 오면 기댈 수 있는 병원이 저희 병원뿐인데 인력 장비부족으로 당직이 없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2010년부터 국가적으로 지역의 심뇌혈관진료향상을 위해 진행하는 권역심뇌혈관센터사업에 참여하게 되어서 많은 인프라와 인력을 확보하고 책임있는 당직제도를 운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국가의 돈은 공짜가 없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경상대학교 병원의 당직심장의가 아니고 경남의 당직심장의가 된 것이지요. 우리 병원의 당직 명단이 질병관리본부에 보고되고 초창기는 당직을 제대로 하는 지 휴대폰으로 전화가 와서 병원내 전화로 5분내로 응답하는 원격감시도 받았답니다.
어쩌다 보니 자의반 타의반 당직하는 의사로 살아왔는데 분명 제가 cardiology를 선택할 때만 해도 순환기내과의 은사님들은 당직과 거리가 멀었고 저도 그렇게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생은 우리의 예측대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을 이렇게 피폐하게 만든 것이 심근경색증 특히 STEMI입니다. 왜 몹쓸 논문들은 STEMI환자에서 primary PCI가 fibrinolysis나 pharmacoinvasive reperfusion보다 사망률이 낮다는 결과를 보고하고 좁은 국토에 촘촘한 PCI 가능한 곳이 많이 생겨서 우리를 당직하는 직업군으로 만들었을까요? 제가 1회 분과전문의인데 이 때만 눈치를 채도 다른 길로 갈 수 있었습니다. 실제 제가 분과전문의를 마치고 난 후 인근 대학병원에서 핵의학과 스텝제의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현인이 말하기를 “잘못 탄 기차가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 말이 공감이 되는 때가 가끔 있습니다. Cardiac arrest로 내원한 환자의 시술을 무사히 마치고 그의 vital sign이 안정되고 대화가 가능해 지고 환자의 보호자를 만날 때 마치 나라를 구한 뿌듯한 느낌을 가지게 될 때입니다. 제 연구실 앞 방에 있었던 모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토요일 새벽에 자택에서 가슴에 압박감을 느끼셨고 빨리 병원에 가야하겠다고 생각해서 사모님과 무조건 택시를 타고 저희 병원으로 가자고 했답니다. 통증이 심해져서 기사에게 신호등 무시하고 달려 달라고 부탁한 후 저희 병원 앞 다리에서 의식을 잃었습니다. 도착 당시에 맥박은 없었고 의식도 없고 동공은 확대된 상태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시술을 시행한 후 다행히 회복을 하셨습니다. 한동안 교수님은 불안감으로 운동을 할 때도 체육복에 만원짜리 1장을 가지고 “택시’가 다닐 수 있는 도로만 걸어 다니셨습니다. 정년하시고 개원하신 병원에 가 뵈었더니 대학병원에서 못다한 진료를 하시면서 보람도 느끼고 사모님과 여유롭게 여행도 하신다고 합니다. 워낙 클래식음악 마니아이셔서 제가 클래식 기타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아시고 구하기 힘든 CD를 50개나 주셨습니다. 그 교수님 아들이 지금 저희 병원 내과전공의인데 순환기내과로 당직을 시키는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이름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당직을 하면서 죽음의 갈림길에서 내가 한 것은 단지 스텐트하나 넣어 준 것뿐인데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의미있는 길로 왔구나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됩니다.
연수갔던 후배 교수가 돌아와서 2023년 8월 2째주부터 당직에서 제외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쓸 때가 당직을 하지 않은 지 한 달이 지난 때입니다. 정말 홀가분한 마음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직하시는 회원님들에게 미안하지만 당직하는 밤에 휴대폰을 끈 채로 잘 수 있고 평일에 약속도 잡을 수 있고 주말에 학회 일정을 보지 않아도 되고 당직 다음날 일정에도 집중할 수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벗은 느낌입니다. 그러나 내 삶에서 때로 누군가의 생명을 이어가는 신의 대리자가 된 듯한 뿌듯한 마음으로 별이 총총한 새벽길을 걸어가는 경험을 더 이상 가지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당직은 고통이지만 의미와 보람을 더 해주고 무당직은 고통은 적지만 의미와 보람이 적어지는 것 같습니다.
힘들 때 마다 떠올리는 말이 있습니다. “메뚜기도 한 철이다” , “지금이 나의 황금시기이다”.
저는 당직이 있었던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무당직에서 새로운 황금시기를 맞이하는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당직을 하는 회원님들은 당직에서 황금시기를 더 많이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경상국립대학교병원 황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