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민노원을지대학교병원
5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72년간 ‘짐이 곧 국가다!’로 자칭하며 절대왕정을 누린 태양왕 루이14
세 (Louis XIV)는 생전에 예술을 사랑하고 그 또한 재능이 뛰어나 직접 발레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그는
화가들에게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생존 당시만 그의 초상화를 700점 이상 그렸다고 하며
현재도 약 300점이 남아있다 [그림1].
달이 차면 기울 듯, 프랑스혁명으로 마지막 왕인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기요틴에서
참수에 처해지면서 왕정이 무너지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혁명정부에 의해서 공화정이
시작된다.
이 때 우리나라의 부관참시와 같이 역대 왕족들의 무덤이 파헤쳐지고 그들의 장기인 심장도 처분이
되어야했다. 세상을 호령했던 태양왕도 이 불행을 피해나갈 수 없었다. 당시 일을 맡은 관리였던 건축가
프티 하델 (Louis-François Petit-Radel)은 그의 친구인 화가 마르탱 드뢸링 (Martin Drollong,
1752-1817)에게 그들의 장기를 전해주어 뭔가 보존할 방법을 고민하였다. 당시의 화가들에게는
그림을 그린 뒤 기름과 알코올을 섞은 투명물감을 덧칠하여 그림에 윤기를 더하고 선명하게 색감을
살리는 글라시 (glacis)기법이 유행이었다. 화가 드뢸링은 “부엌풍경(Interior of the kichen)”이라는
그림을 그린 후 프티하델에게 받은 왕족들의 심장을 갈아서 글라시기법으로 그림을 완성하는데
사용하였다. 부엌풍경이 전체적으로 깊고 밝은 갈색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것 때문으로 추정한다.
이 기사는 2010년 프랑스 대표 예술잡지인 보자르 (Beaux-Ars)에 프랑스 국가기록원의 비밀문서
(분류번호 03-623)를 근거로 보도되었다. 당시, 고단하지만 소박하고 정겨운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드륄링이 1815년 그려서 그가 세상을 떠나던 해인 1817년에 살롱전에 출품되었는데,
당시에는 그 가치가 인정되지 않았고 사후에 현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중이다 [그림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