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 배경 이미지

KSHF The Korean Society of Heart Failure

Heart Failure Times

Vol.38, Jul. 2023

HEART FAILURE FREE TIME

가슴에 긴 손을 올려놓은 젊은 남자의 사연

박상민노원을지병원 심장내과

‘비너스의 탄생’으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의 화가 Sandro Botticelli (1445-1510)가 그린 “Portrait of a young man”의 젊은 남자는 빨간 두건형의 모자를 쓰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뭔가 생각에 빠진 듯 한 눈빛이다 [그림1].

보티첼리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 대체로 젊고 늘씬한 사람 그리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림 속 인물이 오른손을 가슴 중앙에 살포시 올려놓고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일단, 손가락이 눈에 띄게 길어 보인다 (특히, 엄지 손가락 arachnodactyly, spider finger). 약지는 부자연스럽게 안쪽으로 꺾인 듯 중지의 아래에 놓여 있고 관절의 변형이 보이는 새끼 손가락은 몸의 바깥쪽을 향해 있다 (joint deformity and ulnar deviation of finger). 독자들께서도 그림 속 인물을 따라서 급격히 꺾인 고개와 손가락 모양을 취해보면 아시겠지만 이 청년처럼 온화한 표정을 짓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보티첼리가 다른 그림에서 감사의 표시로 후원자가 새겨진 메달을 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적은 두어 번 있으나, 이 그림에서처럼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빈 손을 굳이 가슴 쪽에 올려서 그려 넣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지가 궁금하다! 작가적 허구일지언정 손의 위치는 상행대동맥의 위치로 보인다.

보티첼리의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La nascita di Venere)”에서 나오는 장신의 비너스는 긴 얼굴에 거의 얼굴 길이만큼 이나 긴 목이 눈에 띈다 [그림2]. 그녀 역시 젊은 남자와 같이 오른손을 비슷한 손가락 자세로 가슴 중앙에 얹고 고개는 오른쪽으로 기울인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직선의 긴 목의 축은 좌측 상부를 향하고 얼굴의 길이 방향은 우상부를 향하고 있다. 목이 꺾인 각도나 꺾이는 점은 해부학적으로 skull base와 C1-2 경추가 회전운동만 가능하다는 지식을 동원하여 볼 때 일반인이 연출하기에는 어려운 모습이다. ‘예술적 허용’으로 볼 수도 있으나 보이는 그대로를 그렸다면 인물의 목관절에 과도한 유연성이나 병적 과신전이 있어 보인다. 비너스의 모델로 추정되는 인물은 당대에 이탈리아 예술의 최고 후원자인 메디치 가문의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연인이었던 Vespucci Simonetta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또다른 작품 ‘La Primavera’에서 나오는 비너스 역시 같은 ‘꺾인 목’ 자세를 취하고 있다.

보티첼리의 그림에서 보이는 젊은 인물의 모습은 비록 유전학적 검사로 확인을 할 수는 없지만 형태학적으로 Marfanoid feature 또는 Marfan syndrome (MFS)에 가까워 보인다. 620년 전 보티첼리가 활동했던 시기의 예술계는 르네상스의 시대적 분위기로 인체의 구조에 관심이 집중되고 해부학적 관심이 높아 그도 이에 대한 상당한 소양을 갖추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화가입장에서 인물화는 대상자의 모습을 보기도 좋지만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갈등이 있었을 법하다. 예술가로서 그가 그리고 싶었던 사람은 일반인에 비해 조금 다르고 신체적으로 우월해 보이는 모습을 추구했을 것이다. 그가 원하는 모습이 바로 Marfanoid feature를 보이는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당시에 진단적 기술과 대동맥에 대한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뭔가 기록을 하여 남겨야 할 것 같은 인물의 어떤 해부학적 이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해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MFS은 프랑스 소아과 의사 Antoine-Bernard Marfan이 1896년에 키가 크고 골격이 왜곡된 어린 소녀에서 처음으로 기술하여 알려진 병이다. Autosomal dominant pattern으로 유전되는 FBN1 유전자 이상으로 fibrillin 형성의 장애로 발생하는 결체조직병의 spectrum을 보인다. 서양에서는 만명 당 2-3명으로 그리 드물지 않고, 우리 주변에서도 관심 있게 보면 형태학적으로 유사한 외형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수 년 전 한 유명 운동선수가 본인이 MFS환자임을 고백한 적도 있다. 형태학적으로 긴 뼈 (보통 큰 키에 날씬한 몸태)와 긴 손가락이 흔히 보이고 과도하게 유연한 관절 (thumb sign)로 보통사람이 못하는 관절꺾기? 같은 묘기가 가능하기도 하고, 안과적으로는 수정체이탈에 의한 시력저하가 있다. 심장학적 관점에서는 승모판막이 두꺼워지고 prolapse에 의한 역류증을 잘 일으키며 대동맥 기시부 확장에 따른 2차적인 대동맥판막 역류증이 발생하여 심부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합병증은 상행대동맥의 확장과 박리증이다.

이 병과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또 한 인물은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1809-1865)이다. 그 역시 큰 키에 긴 몸 (193cm, 82kg)과 얼굴에 팔이 길고 손이 큰 모습으로 유명하다. 좁은 턱을 가리기 위해 수염을 길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Marfan이 MFS를 처음 기술한 때가 링컨이 암살된 뒤 30년 되던 해였고, 1962년에 Gordon박사가 링컨의 외형과 가족력을 근거로 그가 MFS을 앓았을 거라는 주장을 했다. 2년 후, 심장 전문의인 Schwart박사는 링컨의 증조할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가 MFS을 앓고 있는 7세 환자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가능성을 높혔다. 링컨의 어머니 낸시 여사와 선대와 후손들의 가족력을 감안할 때 그가 MFS일 것이라는 가설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젊은 남자의 초상의 실제 인물이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아 그의 일생은 잘 모르나 비너스의 모델로 실존인물 이었던 미모의 시모네타는 안타깝게도 20대 초반에 폐결핵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그녀가 의학의 발달로 감염으로 사망하지 않았거나 또, 링컨이 정치적 이유로 암살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어떤 또 다른 사인으로 삶을 마감하게 되었을지 궁금해 진다.

참고문헌

1. Nishikawa T et al. J Oral Maxillofac Surg Med Pathol. 2013;25:374–388
2. ESC committee for practice guidelines. European Heart Journal 2014;35:2873–2926
3. Tsipouras P et al. N Engl J Med. 1992 Apr 2;326(14):905-9.
4. Gordon AM and Schwartz H. Lincoln-Marfan debate. JAMA. 1964:189(2):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