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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HF The Korean Society of Heart Failure

Heart Failure Times

Vol.47, May. 2024

HEART FAILURE FOCUS

미리 가보는 리스본 : 유럽심부전학회(HF 2024)

위진가천의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대부분의 서유럽 대륙 국가들이 GMT+1 시간대를 사용하는데 반해, 포르투갈은 유럽 대륙에 위치하고 있지만 심지어 GMT 0인 영국 런던보다도 서쪽에 있기 때문에 GMT 0 시간대를 사용해 GMT+9 시간대인 한국보다 시차가 9시간 늦다. 하지만 포르투갈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하절기에 서머타임을 시행 중이기 때문에 현재는 한국보다 시차가 8시간 늦다.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동쪽이라는 의미로 극동아시아로 불리는 한국, 일본 등과 비교해 포르투갈은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한국이 태평양에 접해 있는데 반해, 포르투갈은 대서양에 접해 있어 유라시아 대륙만 놓고 본다면 한국과 포르투갈은 지리적, 기후적으로 가장 이질적인 나라인 셈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포르투갈은 역사적으로 보면 유럽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극동아시아와 가장 먼저 밀접한 관계를 맺은 나라였다. 포르투갈은 유럽 최서쪽 대서양에 인접한 지리적 특징으로 바다로 진출해 가장 먼저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나라였다. 항해왕 엔리케 왕자의 주도로 15세기 초부터 대서양 항로를 개척했던 포르투갈은 바스코 다 가마가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 희망곶을 돌아 인도로 가는 동방항로를 개척한 이래 인도양을 거쳐 더 나아가 중국 남부 해안 지역, 일본 등과 교류를 시작한 최초의 유럽 국가였다. 현재는 중국으로 반환된 마카오가 이 시기에 건설된 포르투갈의 무역 거점이었고, 일본의 서양 무역 거점이었던 나가사키도 원래 포르투갈과의 무역을 위해 건설되었다가 이후 네덜란드와의 무역 거점이 되었다. 포르투갈은 일본에 여러 서양 문물을 전달해 주었는데 현재 우리가 먹는 `빵’의 어원도 포르투갈어 `pão’가 일본을 거쳐 유래한 것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우리 역사에서 포르투갈과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것이 포르투갈이 일본에 전해준 조총이었다. 이 조총으로 인해 전국시대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할 수 있었고 그 군사력을 바탕으로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했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갔던 수많은 조선인 포로들이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유럽에 노예로 팔려 나갔다. 또한 병자호란 당시 조선 조정은 남한산성에 틀어박혀 항전을 지속했으나 청나라 군이 사용했던 대포였던 `홍이포’의 위력 앞에 결국 무릎을 꿇게 된다. 이 홍이포 역시 원래 포르투갈이 명나라에 전해준 무기였는데, 청나라가 명나라에서 빼앗은 뒤 조선 정벌 시 사용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지만 우리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큰 외세의 침략이었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모두 간접적으로 포르투갈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포르투갈은 이베리아 반도의 서쪽 대서양 연안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서유럽에 속해 있지만 서기 8세기경 북아프리카로부터 건너온 이슬람인들에게 700년 가까이 지배를 받았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권의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는 다르게 현재에도 여전히 이슬람의 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 특히 리스본 시내를 걷다 보면 흰 바탕에 보통 파란색으로 그림이 그려진, 마치 로얄 코펜하겐 도자기와 비슷한 독특한 스타일의 타일로 장식된 건축물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이를 `아줄레주(azulejo)’ 라고 한다. 아줄레주는 아랍어로 `작고 아름다운 돌’ 이라는 의미로 타일을 건축물에 처음 활용한 아랍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줄레주는 건물의 외관 장식뿐 아니라 그릇, 접시, 냄비 받침 등 다양한 곳에도 활용된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포르투갈 여행 기념품으로 아줄레주로 장식된 그릇이나 접시, 컵 등을 주변에 선물하면 아주 좋은 반응을 보인다. 실제 필자도 수년 전 리스본 여행 당시 기념품으로 아줄레주 접시들을 여러 개 구입해 집에도 가져오고 주변에도 선물했는데, 포르투갈의 세라믹 기술이 우수한데다 아줄레주 접시들은 이국적이기도 하면서 실용적이기 때문에 그동안 외국에서 사왔던 어떤 선물보다 반응도 좋았고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필자가 직접 찍은 다양한 아줄레주 타일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 벨렝지구는 발견기념비, 벨렝탑, 제로니무스 수도원 등 둘러볼만한 역사적인 명소들이 많은 지역으로 테주 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도보로 이동하며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다. 여기에 원조 에그타르트 베이커리인 `Pasteis de Belem’ 역시 제로니모스 수도원 근처에 있기 때문에 에그타르트를 포장해 나와 먹으면서 반나절이면 둘러볼 수 있는 좋은 여행 코스다. 발견기념비는 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항해왕 엔리케 왕자의 사망 500주기를 기념해서 만들어진 기념비로 당시의 범선이었던 `카라벨’ 모양으로 되어 있다. 기념비의 맨 앞쪽에는 엔리케 왕자의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으며, 그 뒤로 바스코 다 가마, 바르톨로뮤 디아스 등 대항해시대의 주요 인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발견기념비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전설적인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로 발견을 기념하기 위해 건축되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고딕, 르네상스 양식에 동양적 양식까지 병합한 건축 양식의 걸작으로, 이국적이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16세기 포르투갈 특유의 건축 양식인 '마누엘 양식'으로 지어진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이 수도원은 하얀색 석회석으로 만들어져 햇살 좋은 날 바라보면 짙은 파란색 하늘과 대비되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르누아르 그림의 특징인 화이트와 코발트 블루의 산뜻한 대비가 연상된다. 필자가 유럽의 다양한 시대 수많은 건축물을 보았지만 제로니무스 수도원 정문 앞에 서서 바라보았을 때의 첫 느낌은 정말 독보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근처 테주 강변에는 바스코 다 가마의 위대한 발견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벨렝탑이 있다. 벨렝탑에는 '테주강의 귀부인'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데 이런 별칭은 괜히 붙여진 게 아니다. 직접 가서 보면 탁 트인 테주강 위로 화려한 마누엘 양식의 벨렝탑이 꼿꼿하고 우아한 자태로 솟아 있는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과거 벨렝탑은 드나드는 이들을 감시하는 요새이기도 했고, 모든 탐험대의 전진 기지이기도 했다. 발견기념비는 바스코 다 가마가 항해를 떠난 자리에 세워졌고,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탑은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로 발견을 기념하기 위해 건축되었으며, 바스코 다 가마는 사후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묻히는 영광을 누렸다. 결국 벨렝지구에 있는 발견기념비, 제로니무스 수도원, 벨렝탑 모두 바스코 다 가마의, 바스코 다 가마에 의한, 바스코 다 가마를 위한 것으로 포르투갈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대였던 대항해시대 바스코 다 가마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필자가 직접 찍은 제로니무스 수도원 정문

수도인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전성기였던 대항해시대의 중심이 되었던 도시로 15세기 중엽부터 해외 식민지에서 흘러 들어오는 재물들로 인해 급격한 성장을 이루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불렸다. 하지만 이후 네덜란드, 영국 등 신흥 강국에 밀리면서 해외 식민지를 잃고 국력이 쇠약해지다가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인해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고 수만 명이 사망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후 포르투갈은 유럽의 역사에서 2류로 밀려났고 수도인 리스본 역시 포르투갈의 영화와 쇠락을 고스란히 함께해 왔다. 리스본 벨렝지구에서 포르투갈 대항해시대의 화려한 전성기를 느껴보았다면 낡은 전차를 타고 리스본 구시가지도 꼭 한번 들러보길 권한다. 구시가지 언덕의 구불구불한 골목들을 걸어 내려오며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문득 다른 유럽의 도시들에서는 느낀 적 없는, 마치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노년의 쓸쓸함이 느껴지곤 한다.

필자가 직접 찍은 리스본 구시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