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근경색연구회

e-Newsletter (2025-Autumn)

Direct PCI의 여명을 기억하며

interviewee 김영조
  • 김영조심혈을기울이는내과
| interviewer 최강운,김보경
  • 영남의대

급성 심근경색 치료의 핵심인 Direct PCI가 다른 분야에 비해 의외로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한국에서 Direct PCI가 정착하는 데 초창기 심장내과 전문의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Direct PCI의 여명기에 이 치료법의 정착에 기여하신 김영조 교수님의 인터뷰를 통해 그 시절을 회고하고, 앞으로 심근경색 치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보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국내외 초창기 PCI는 어떤 시술이이었나요?

아시는 대로 1977년 Gruntzig가 안정형 협심증에서 초기 성공률 60%를 보고하면서 새로운 치료법으로 소개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초기성공률이 90%로 발전하였습니다. 하지만 급성혈관폐쇄(acute, abrupt occlusion)이 7%정도 발생하여 emergent CABG, 심근경색 혹은 사망하였고 재협착률이 30-50%로 발생하여 ‘과연 PCI가 적당한 치료법인가?’하는 심장의사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 후 장비와 기구의 발달로 초기 성공률이 90%에 달해 점차적으로 중요한 관상동맥 중재술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국내 PCI의 시작은 1980년대 중반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스텐트 없이 풍선 확장술(balloon angioplasty, PTCA)만 시행되었고, 심혈관촬영장비나 혈관 내 시술 장비 즉 카테타와 풍선이 현재와 같이 시술에 적합하지 않아 시술에 어려움이 있었고 시술자들도 경험이 적어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또한 항혈전제/항혈소판제가 없어 급성폐쇄나 dissection이 심하게 나타나면 흉부외과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특히 야간에 emergent CABG가 발생하면 흉부외과 수술이 종료될 때까지 환자가 무사하기를 초조히 기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풍선의 압력을 단계적으로 올리고 중간 중간에 혈관 촬영을 하여 dissection 혹은 low/no reflow가 있는지 확인하면서 시술을 하기 때문에 dye의 사용량이 많아지고, 시술시간이 길었습니다. 따라서 PCI 가능한 병원을 흉부외과가 있는 병원에 국한하여 시술할 수 있도록 권장사항을 두기도 했습니다. 시술이 발전하여 점점 성공률은 좋아졌지만, acute closure, severe dissection, restenosis문제는 여전히 문제가 되어 stent가 등장하게 되어 많은 의사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초기 시술의 결과(Wallstent 1987)는 subacute thrombosis가 많이 발생하여 더 좋은 항혈전제가 필요하여 출혈의 빈도가 많아져 많은 의사들이 stent가 풍선성혈술의 친구인가 적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술 기술이 발전하면서 stent underdilation이 중요한 원인으로 밝혀지면서 post-dilatation으로 더 좋은 성적을 보였지만 당시는 현재와 같은 항혈소판제(ticlopidine(1990), clopidogrel(2000))가 없어, heparin, dyridamole, warfarin 등을 사용하여 여전히 stent thrombosis등의 시술에 따른 합병증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시술 기술의 발전과 시술기구의 발전으로 점차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되고, 새로운 약제가 한국에 소개되면서 시술 시 의사들의 불안은 한층 감소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처음 심혈관 중재시술에
참여하신 시점은 언제였나요?

군 제대 후 1984년에 세종병원에 근무하면서 되면서 cardiac catherization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87년 일본 국립순환기센타 연수 후 영남대학병원에 근무 중, 1992년 혈관촬영기가 도입되면서 그 해부터 PCI를 시작하였고 당시에는 전국적으로 PCI 가능한 병원이 많지 않았습니다.

급성심근경색증 환자의 치료로 Direct PCI로 자리 잡는 데
그 동안의 발전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초창기 PCI는 안정형협심증에 대한 치료로 권장되었고 급성시기에는 이용되지 않고 시간이 지난 후에 PCI를 시행하였고, 1980년대 경험적으로 일부 선택된 환자에서 적용되었지만 급성혈관폐쇄, 재협착 등으로 합병증이 많아 대부분의 환자에서 혈전용해술(intravenous 혹은 intracoronary thrombolytics)를 사용하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urokinase를 사용하였는데 단위 용량이 낮아 수십 개의 앰플을 따서 정맥주사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에 항혈소판제의 발전과 더불어 direct PCI가 혈전용해술보다 치료성공률이 좋아지면서(PAMI trial), direct PCI가 급성심근경색증의 치료의 중심에 서게 되어 많은 병원에서 24시간 시술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 중반 Bare-metal stent(BMS)가 소개되고 aspirin, ticlopidine, clopidogrel, heparin등의 사용의 안전성이 확보됨에 따라 direct PCI가 확실한 치료법으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술 기법도 점차 정교해졌을 텐데 thrombolysis와
direct PCI가 어떻게 변천되었나요?

경화반이 파열로 인한 혈전생성으로 혈관폐쇄가 중요한 병태생리인 점을 고려하여, ‘Time is muscle’이란 개념으로 빠른 재관류가 중요한 치료라 초기에는 thrombolysis only,  thrombolysis만으로 완전히 재관류(TIMI flow III)가 되지 않는 결점을 극복하기 위한 이론적으로는 합리적인 개념, facilitated PCI(thrombolysis 후 2시간이내 PCI)와 pharmacoinvasive PCI(PCI가 어려운 상황에서 thrombolysis후 24시간 이내 PCI)가 소개 되었으나 많은 연구결과, direct PCI가 보다 우수한 치료법으로 결론이 나면서 혈전용해제는 특수한 환자에게만 적용하는 치료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Direct PCI의 초기(dawn period)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초기에는 현재와 같은 항혈소판제/항혈제(clopidogrel, prasugrel, GP IIb/IIIa inhibitor 등)이 없었고 단순풍선으로만 병변을 시술하여 많은 합병증, 즉 acute closure, recoil, restenosis, 시술 후 부정맥, 출혈 등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emergent CABG도 하는 경우도 있어 마음의 고통이 있었던 것 것 같습니다.

요즘은 Direct PCI나 Primary PCI라는 표현도
자주 쓰이는데, 이 둘은 어떻게 구분되는 개념인가요?

이 두 용어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의미가 다릅니다.
Primary PCI는 말 그대로 심근경색(STEMI) 환자가 왔을 때 첫 번째 치료로 PCI를 시행한다는 전략적 개념입니다. 예전에는 thrombolysis(혈전용해술)을 먼저 시행하고, 시간이 지나도 호전이 없을 때 PCI(rescue PCI)를 시행하거나 thrombolysis후 시간이 지난 후 혈관촬영을 하여 남은 병변이 있으면 PCI(delayed PCI)를 하는 방법이었는데, primary PCI는 thrombolysis없이 항혈전제 투여 후 바로 PCI(door-to-balloon time<90min.)한다는 개념이고, 반면 Direct PCI는 rescue PCI 혹은 facilitated PCI 에서 대응되어 초기에 사용된 개념으로 환자가 도착하자마자, 입원 수속하면서 곧장 시술실로 옮겨 PCI를 시행하는 방식입니다. PCI가 가능한 병원에서 시간을 더욱 줄여 보자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지금은 primary PCI가 널리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기술과 개념이 발전해왔지만, 결국 실제 치료 결과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은 자본과 기술의 발전으로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가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시스템’의 여부입니다. 정책적 이동 시스템이 119를 통해 많은 발전이 되었지만 24시간 시술이 가능한 병원이 많아져야 하고 여기에 종사하는 심혈관중재술을 할 수 있는 의사의 양성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 생각됩니다.

이런 치료 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데이터도 중요했을 텐데,
국내에서 MI 관련 레지스트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그게 1999년 말쯤이었습니다. 그때 ‘Heart Care Network’라고 전국의 병원 심장내과 의사들이 모이는 모임이 있었는데, 그 당시까지만 해도 각 병원에서 PCI는 하고 있었지만 환자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거나 분석하는 시스템은 없었습니다.

이후 데이터 수집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KCAR, 즉 Korean Coronary Artery Disease Registry라는 이름으로 레지스트리가 시작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점은 꽤 선도적인 출발이었습니다.제가 미국에 다녀오기 전이었고, 12월쯤 전국 병원 선생님들과 모여 “우리 그냥 흩어지지 말고 계속 데이터를 모아보자”고 약속했습니다. 당시에는 인터넷 입력 시스템도 없어 손으로 일일이 기록해가며 모았는데, 그것이 지금 KAMIR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KAMIR가 지금처럼 대표 레지스트리로
자리잡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도 궁금합니다.

KAMIR가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건 2005년이었습니다.
그 해 대한심장학회 50주년 기념 연구 공모에 전남대 정명호교수가 제안한 AMI registry(KAMIR)가 선정되면서 5억 원의 연구비를 확보했고, 당시 인력과 인프라를 고려해 심근경색 환자 연구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품질 높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고, 국내외 학술지에 논문도 지속적으로 발표되면서 “한국에도 이런 레지스트리가 있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알리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KAMIR가 AMI 관련 국제 연구에서 반드시 인용되는 대표적 레지스트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검색하면 국제학회에서 사용되는 그래프나 데이터가 다수 나올 정도입니다. 따라서 AMI에 관련된 자료와 치료는 세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결과는 정명호교수의 노력이 밑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심근경색연구회는 창립 당시의 배경은 어땠습니까?

KAMIR를 통해 연구 기반은 마련되었지만, 후학을 교육하고 심근경색 분야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학회와 같은 공식 조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심근경색연구회’가 창립되었습니다. 이 연구회를 통해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었고,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도 구축할 수 있어 많은 논문이 국제적인 유명학회지에 게재되었습니다. 그 결과 심장학회로부터 2014년 정식으로 심근경색연구회가 승인되어 발족되었습니다.

선배님들의 헌신 덕분에 심근경색 진료와 연구가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후배들이 주목해야 할
치료와 연구의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결국 환자 개개인에 맞게 시술 전략을 조정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같은 병이라도 혈전의 크기, 위치, 혈관 상태는 모두 다릅니다. 처음부터 스텐트를 넣는 것이 능사는 아니며, 오히려 혈류만 살려놓고 상태가 안정된 후에 다시 들어가 정리하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많습니다. 데이터는 표준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최선의 선택은 현장에서 환자를 직접 보고 환자의 상황에 따른 치료(personalized therapy)를 생각하고 다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reframing) 의사가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진짜 의학이며, 앞으로는 의사 혼자 치료 방침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team approach가 강조되는 미래는 이러한 임상 판단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있으실까요?

미국의 1900년대에 산 Paul Dudley White라는 심장의사의 삶과 철학을 담은 ‘Take heart’라는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심장내과 의사는 이 책명처럼, 자신의 심장뿐 아니라 환자의 심장도 자기 심장처럼 여기며 'Take heart'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급성심근경색증은 의사에게 더 이상 두려운 응급질환도 아니며 빨리만 치료하면 단지 치료될 수 있는 만성질환으로 인정되고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사후 관리에서 우리는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심근경색연구회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일한 조직입니다 지식도 물론 중요하지만, 환자를 내 가족처럼 진료하려는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묵묵히 정진해 나간다면, 의사로서의 성장과 함께 심근경색연구회의 꾸준한 발전도 함께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